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얼티밋 워리어 (문단 편집) === WWF === 전사 중의 전사라는 의미로 후일 그를 유명하게 만들어줄 얼티밋 워리어라는 링네임과 함께 1987년 테리 깁스를 상대로 데뷔전을 치르며 WWF의 무대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워리어는 당시 오락적인 요소를 중시하던 WWF의 흐름과 딱 맞아떨어졌으며 경쾌한 음악과 함께 달려나오는 인상적인 등장씬 등과 함께 큰 인기를 모았다. 1988년 [[WWF 레슬매니아 IV|레슬매니아 4]]를 통해 레슬매니아 무대에 첫발을 들여놓으면서 허큘리스를 4분 30초만에 꺾어버리는 강력한 모습을 보여줬고, 동년 [[WWF 섬머슬램(1988)|섬머슬램]]에서는 15개월간 장기집권 중이던 [[홍키 통크 맨]]을 31초만에 초살시켜버리며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에 등극한다. [youtube(hzmWjqzOtfk)] 게다가 [[WWF 레슬매니아 III|WWF 레슬매니아 3]]에서 [[헐크 호건]]에게 패배한 걸 제외하면 좀처럼 꺾이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던 [[앙드레 더 자이언트]]마저 [[WWF 서바이버 시리즈(1989)]]에서 시작하자마자 크로스라인으로 링 밖으로 보내 카운트아웃으로 제거해 버리는 등 강력한 푸시를 받는다[* 물론, 워리어는 헐크 호건처럼 앙드레를 상대로 멋진 바디슬램을 선보이거나 완벽한 핀폴승을 거둘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앙드레를 상대로 카운트아웃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WWF의 푸쉬가 강력했었다는 방증으로 볼 수 있다.]. 수그러들줄 모르는 기세로 치고 올라가던 워리어는 1990년 [[WWF 레슬매니아 VI|레슬매니아 6]] 메인이벤트에서 WWF 챔피언 [[헐크 호건]]과 서로 타이틀을 걸고 경기를 펼치게 됐는데, 이 경기에서 헐크 호건을 꺾고 WWF 챔피언에 오르게 된다.[* 이후 WWF 인터컨티넨탈 벨트는 반납했고 새로운 챔피언을 뽑기 위한 8강 토너먼트가 벌어졌다.] 사실 이것은 호건이 영화 촬영을 위해 자리를 비워야 했던 관계로 내려진 결정이었다. 훗날 호건은 이 경기에 대해 워리어가 빨리 경기를 끝내고 집에 가고 싶어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정작 호건의 대안으로 워리어가 챔피언에 오르자 예상 외로 흥행 실적은 하향세를 탔고, 게다가 워리어는 경기를 리드해 나가는 타입이 아니었기에 대립 상대가 [[릭 루드]], [[커트 헤닉]], [[테드 디비아시]], [[랜디 새비지]]같은 베테랑 워커들로만 한정 되었다. 결국 WWF에서는 호건을 다시 불러왔고, [[WWF 섬머슬램(1990)|1990년 섬머슬램]]에서는 [[헐크 호건]]과 [[어스퀘이크(프로레슬러)|어스퀘이크]]의 일반 경기, 워리어와 [[릭 루드]]의 WWF 챔피언쉽 철창 경기가 더블 메인이벤트로 잡힌다. 분명 순서상으로도 메인이벤트는 워리어와 릭 루드의 경기였지만 이목은 호건의 경기에 집중됐으며 메인이벤트 수당 또한 호건과 어스퀘이크에게 돌아갔다. 메인이벤트를 뛰었음에도 추가 수당을 받지 못한 [[릭 루드]]는 불만을 품고 WWF를 나가게 된다. 이래저래 타이틀을 방어해나가던 워리어는 [[WWF 로얄럼블(1991)]]에서 [[서전 슬로터]]를 상대로 방어전을 치르던 도중 경기 막바지에 [[랜디 새비지|마초킹 랜디 새비지]][* 이때는 마초맨이 아니라 악역 마초킹 기믹으로 활동했다.]와 [[센세이셔널 셰리|셰리 마텔]]의 도움을 받은 슬로터에게 패배하고 챔피언 밸트를 빼앗기게 된다. 이에 [[WWF 레슬매니아 VII|레슬매니아 7]]에서 워리어는 자신을 방해했던 마초킹과 패자는 은퇴한다는 조건을 걸고 싸워서 승리하여 새비지를 은퇴시켰고[* 이날 워리어는 평소처럼 전력질주로 뛰어오는게 아니라 걸어서 등장했다. 그래서 당시 중계를 맡던 고릴라 몬순이나 [[바비 히난]] 모두 “왜 안뛰어오지?”라고 의아해했다.], 그 뒤 떠오르는 신성이었던 [[언더테이커(프로레슬러)|언더테이커]]와 대립하게 되지만 무슨 이유에서였던 건지 한창 대립에 물이 오르려던 찰나 워리어는 [[제이크 로버츠]], [[언더테이커(프로레슬러)|언더테이커]]는 [[헐크 호건]]으로 각각 상대가 바뀌면서 흐지부지되어버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스테로이드]] 파동이 WWF를 휩쓸면서 호건의 인기가 예전보다는 떨어지게 되자, 빈스는 다시한번 호건의 대안으로 워리어를 고민하게 된다. 사실 레슬매니아 7은 [[걸프 전쟁]] 역풍을 제대로 맞아 흥행에서 심각할 정도로 재미를 보지 못했던 PPV[* 역대 레슬매니아 중 최저 관중수를 기록했다.]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리어는 [[빈스 맥마흔]]에게 레슬매니아 7의 수당을 제대로 지급해달라는 요구를 했고 다급해진 빈스는 워리어에게 55만달러의 보너스를 지급한다. 이외에도 빈스는 워리어의 이런 저런 요구를 다 들어줬고 이런 상황 속에 워리어는 호건과 팀을 이뤄 [[WWF 섬머슬램(1991)]]의 메인 이벤트에서 [[서전 슬로터]], 커널 무스타파, 제너럴 아드난을 상대하게 된다. 특별 심판은 [[사이코 시드|시드 비셔스]]였는데, 빈스는 썸머 슬램이 끝나자 바로 워리어를 해고한다. 시드가 워리어를 충분히 대체할 수 있을거라고 판단했기 때문. 하지만 사그라들지 않은 스테로이드 파동으로 인해 호건의 인기는 나날이 추락했으며, 호건은 [[WWF 레슬매니아 VIII|레슬매니아 8]]의 메인 이벤트에서 [[사이코 시드|시드 저스티스]]를 상대로 은퇴전을 치러 하비 위플맨의 난입으로 DQ승을 거뒀지만 [[사이코 시드|시드 저스티스]]와 [[갓파더(프로레슬러)|파파 샹고]]에게 두들겨맞게 됐고 그 순간 워리어가 뛰어들어와 호건을 구해준다. [[헐크 호건]]은 훗날 DVD에서 "타 경기장에 비해 엄청나게 긴 후저 돔의 출입구를 대번에 뛰어온 워리어는 링에 올라올 무렵 체력이 다 소진되어 있었다."고 멘션을 덧붙였다. 한편 이때쯤 죄수 기믹인 [[네일즈]]가 빅 보스맨과의 대립이 끝나고 워리어와의 대립이 형성되려고 했으나, 네일즈가 맥맨 부자와의 폭력사건으로 방출돼서 불발되었다. 예전과 같이 호건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빈스의 판단으로 돌아오게 된 워리어는 레슬매니아 8을 계기로 시드와 대립하나 스테로이드 양성 판정으로 징계를 받게 된 시드가 불만을 품고 WWF를 떠나면서 허공에 붕 뜬 신세가 된다. [[갓파더(프로레슬러)|파파 샹고]]가 시드의 땜빵으로 워리어와 대립하지만 팬들의 반응은 최악에 가까웠다. 당시 WWF는 스테로이드 파동이 아직 가시지 않은지라 약물 사용에 민감한 상태였고, 우람한 근육을 지닌 워리어와 [[브리티시 불독]] 데이비 보이 스미스는 그 용의선상에 올라 있는 상태였다. 이로 인해 당시 브렛 하트가 안정적인 인물로 낙점되어 하이 미드카더급에서 메인이벤터로 급부상하게 된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빈스는 1992년 11월 스미스가 영국에서 성장 호르몬을 구해 워리어에게 제공했다는 빌미로 둘을 함께 해고시켜버렸고 워리어는 이에 대해 부당해고라며 소송을 걸었으나 결국 패소했다. 해고당한 워리어는 인디 및 일본 단체에서의 활동을 노렸지만 몸값을 너무 비싸게 부른 탓에 그를 찾는 이는 많지 않았다. 주당 10만 달러를 요구하는 것은 양반이거니와 어떤 이벤트에서는 아예 매출의 50%를 달라고 하기도 했으며, 이렇게 비싼 돈을 줘서 애써 섭외하면 이벤트 직전에 안 나가겠다고 땡깡을 부려서 추가 보너스를 줘야 하는 등 악명이 자자했다. 또한, 애리조나에 워리어 대학이라는 이름의 프로레슬링 도장을 차렸으나 오래 가지 못하고 망했다. 1996년 [[WWF 레슬매니아 XII|레슬매니아 12]]를 앞두고 [[케빈 내시|디젤]]과 [[스캇 홀|레이저 라몬]]의 [[WCW]] 이적이 확정되면서 WWF의 메인이벤터진에 큰 공백이 생길 위기에 처하자 빈스는 메인이벤터들이 받는 액수를 뛰어넘는 거액으로 다급히 워리어를 불러왔다. [[WWF 레슬매니아 XII|레슬매니아 12]]에서 워리어를 상대하게 된 [[트리플 H|HHH]]는 재미있는 경기를 만들기 위해 워리어와 경기 내용을 상담하려 했지만 거부당했으며, 결국 딸리는 짬밥 때문에 찍 소리도 못 하고 '시작하자마자 페디그리 - 씹힘 - 고릴라 프레스 - 워리어 스플래시'라는 경기내용으로 1분 30초 남짓한 시간에 허무한 패배를 당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HHH 본인은 물론이거니와 클릭 멤버들도 워리어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품게 된다.[* [[트리플 H]] 본인은 [[http://wrestlemedia.net/news/7202|#]] 인터뷰에서 당시에 패배에 악감정은 없고 오히려 자신의 레슬매니아 데뷔전을 거물과 치를 수 있어서 자랑스러웠다는 발언을 했다. 립서비스이든 진심이든 일단 악감정은 지금으로서는 남아있지 않은 걸로 보인다.][* 그러나 짧고 굵게 워리어 다운 경기를 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게임의 질을 따지기 전에 급하게 불러온 선수라 스토리가 전혀 없었고, 경기를 길게 끌고 나가기엔 기술이 많지 않던 워리어이기 때문에 자칫 루즈할수 있었던 상황을 빠르게 경기를 끝냄으로써 결과론적으론 나쁘지 않았다.] 이후 워리어는 [[더스틴 로즈|골더스트]], [[오웬 하트]], [[제리 롤러]] 등과 대립을 펼쳤으며 이때도 4~6분만에 초살시켜버리는 무적 패턴의 경기는 여전했지만 예전에 비하면 확실히 취급은 좋지 않았다. 심지어 1996년 5월 PPV였던 [[WWF 인 유어 하우스 8: 비웨어 오브 독]]에서 워리어와 오웬 하트의 경기는 다크 매치로 돌려지기도 했다. 워리어는 자신에 대한 취급 때문에, 회사 내부에서는 워리어의 독선적인 성격과 높은 임금 등으로 인해 서로 불만이 쌓여가고 있었으며 이런 와중에 워리어가 6월에 열렸던 하우스쇼를 펑크내는 사태[* 이 때 공교롭게도 또 시드 비셔스가 워리어의 대타로 나왔고, 이를 계기로 WWF에 복귀하게 됐다.]까지 일어나자 빈스는 진짜 마지막으로 워리어를 해고하기로 마음먹는다. 기묘하게도 하우스쇼 펑크 사태 이후 1996년 6월 30일 부친이 별세하여 워리어는 7월 1일자 RAW에 나오지 못했는데, 워리어가 3살 때부터 아버지와 헤어져 살았다는 건 널리 알려진 이야기였기에 대부분은 이를 변명으로 치부했다. 그럼에도 워리어는 일방적으로 복귀를 주장하여 7월 8일 RAW에 등장, [[오웬 하트]]에게 DQ승을 거두지만 WWF 회장 역할을 맡고 있던 고릴라 몬순이 등장하여 워리어의 징계에 대해 알렸다. 하우스쇼 불참에 대한 위약금 25만 달러를 내지 않는 이상 복귀할 수 없다는 게 징계의 골자였는데 이는 사실상 해고나 다름없는 조치였다. 열받은 워리어는 다시금 부당해고에 대한 소송을 걸었고 덤으로 저작권 소송까지 얹었으며, 소송에서 이기기 위해 본명까지 워리어로 바꿔버리는 강수를 둔다. 흔히들 성을 바꿀 것을 강요당한 부인이 워리어와 이혼했다고 잘못 알려져 있는데, 워리어의 전처였던 샤리 린 타이리는 1982년에 결혼하여 1991년 3월, 불과 레슬매니아 7 이틀 전에 이미 이혼한 상태였다. 워리어는 2000년 데이나와 재혼하여 두 명의 딸을 뒀는데 이들은 얌전히 워리어라는 성씨를 쓰고 있다. 부당해고에 대한 소송은 여전히 별 성과가 없었지만 저작권 소송에서는 성과를 거둬 얼티밋 워리어라는 이름의 소유권을 가져오게 된다. 대신 타 단체에서는 얼티밋 워리어라는 이름은 쓸 수 없다는 조건[* 그래서 [[WCW]] 등 타 단체에서 활동할 때에는 '워리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이 붙었기에 완벽한 승리라고 보긴 힘들지만.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